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리고 민주사회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우리는 22대 국회에서 발의된 차별금지법에 지지를 표하며, 이번에는 반드시 이 법이 제정될 것을 촉구합니다.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한 지 어느덧 2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습니다. 법안이 처음 발의되었을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차별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은 한국 사회 안에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별금지법은 매번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보수 개신교를 비롯한 여러 반대에 부딪혀 폐기되어 왔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차별금지법에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는 거의 모든 정치인이 받는 질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종종 “아직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며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한다”는 답변을 요구해 왔습니다. 이에 반하는 목소리는 조직적인 방해와 공격 속에서 고통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차별금지법을 발의한 진보당 손솔 의원을 포함한 10명의 국회의원들의 용기에 깊은 환영과 지지를 보냅니다. 그 용기가 앞으로 맞닥뜨릴 반대 앞에서도 꺾이지 않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말이 다시 한 번 법안 폐기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차별받는 사람들이 겪는 불편과 고통은 추상적인 문제가 아니라 현실입니다. 차별은 개인에게 상처를 남길 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큰 비용을 치르게 합니다. 이 법안을 격렬히 반대하는 사람들, 특히 보수 개신교인들 다수는 차별금지법이 자신들의 삶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경우가 많으며, 법의 내용 자체를 충분히 알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들이 반대하는 것은 실제로 발의된 적조차 없는, 극우 스피커들을 통해 유포된 왜곡된 이미지일 때가 많습니다. 이러한 무지와 오해에서 비롯된 반대 때문에, 실제로 차별로 고통받는 이들의 삶이 더 지연되고 사회가 치러야 할 비용이 늘어나는 것은 결코 합리적이지도, 정당하지도 않습니다.
내란을 몰아내던 그 겨울의 광장에서, 수많은 여성과 장애인, 성소수자 등 차별금지법의 당사자들이 자리를 지키며 목소리를 냈던 것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밝힌 빛은 단지 정권 퇴진만을 외친 것이 아니라, 차별 없는 평등한 사회를 요구하는 외침이었습니다. 소수자들은 마이크를 잡고, 행진하며, 그 공간에서 온전히 시민으로 존재했습니다. 정치권은 그 광장에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 빚에 응답하는 가장 분명한 방식은 차별금지법 제정에 앞장서는 것입니다.
한 하나님 안에서 가족 된 그리스도인들께도 호소합니다.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자리에 서기보다, 오히려 찬성하고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편에 서 주십시오. 성소수자를 비롯해 우리 곁에서 숨 쉬며 살아가는 다양한 소수자들에게 ‘두려움 없이 사랑하는 이웃’이 되어 주십시오. 출애굽기 1장에서 이집트의 파라오는 무지와 편견 속에서 히브리인들을 두려워하게 되었고, 그 두려움은 억압과 생명의 위협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산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했기에 파라오의 명령을 거부하고 생명을 살리는 선택을 합니다. 두려움 없는 사랑의 본을 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왜곡된 편견에서 비롯된 혐오와 위해를 멈추고 하나님에 대한 거룩한 두려움으로 생명을 살리는 길을 선택해 주십시오.
한국 사회가 조금 더 두려움 없이 사랑할 수 있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라며, 우리는 다시 한 번 22대 국회의 차별금지법 제정을 강력히 촉구합니다.
로뎀나무그늘교회